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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9] 올라갈때와 내려갈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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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순우 작성일05-06-14 20:04 조회8,6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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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지혜서에 써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흥할 때가 있고 망할 때가 있다. 웃을 때가 있고 통곡 할 때가 있다. 지나간 해에는 대권의 꿈을 가지고 도전했던 사람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이리 떨어지고 저리 떨어지면 결국에는 한 사람만이 소원성취하고 나머지는 눈물을 흘리며 씁쓸하게 물러나고 말았다. 당선된 자는 가는 곳마다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인생승리와 행운을 만끽한다. 그러한 탓에 그 어려운 과정을 돌파하느라고 천신만고를 감수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렇게 바라고 소원했던 그 명예와 행운이 계속 영원히 안겨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인간역사는 거울이다. 역사적 사실들을 우리의 삶의 지혜를 공급해준다. 첫째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허영과 욕심이 앞서 또는 주변의 구름 때 같이 몰려들어 추켜세우는 그 아우성의 와중에서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좋은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자신을 비롯해서 국가와 모든 사람에게 불행의 씨앗을 심은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자격도 실력도 없는 사람이 욕심에 이끌려 큰 감투를 독식하고 만다면 순리를 짓밟는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 무리수는 후유증이 생기고 후유증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성서에 나타난 대표적 사건은 아비멜렉의 처신에서 볼 수 있다. 방탕하고 경박한 깡패를 동원해서 자기형제 칠십인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중 요단이 비유하길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가 사양하는 왕의 자리를 가시나무가 차고앉으니 꼴불견이요 시행착오가 되어 그 끝이 크게 잘못될 것을 예언한 그대로 아비멜렉은 한 여인의 맷돌 윗짝에 맞아 두개골이 깨졌을 때 그의 보디가드의 칼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 성서적 비사는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실력도 자격도 능력도 없는 자가 욕심, 허영심에 의해 시중잡배를 동원해서 권좌를 찾아 올 경우 찾아 올 만한 필연적 결과이다. 역사적으로 독일의 히틀러가 그랬고 근년에는 폴랜드의 바웬사가 그랬다. 바웬사는 중학교 출신으로 전기용접공이었다. 노조를 결성해서 투쟁의 명수요 민주화의 영웅이 되었다. 대통령에 출마해서 절대다수의 표를 얻어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노벨 평화상도 탔다. 참으로 입지전적 성공사례가 되었고 전 세계의 서민, 노동자, 농민의 희망의 등불이 되었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의 한계가 들어 나서 인기가 최하위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급기야는 국민에게 버림을 받고 말았던 것이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열광적인 인기는 거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열광적으로 치켜올린 군중들은 삽시간에 열광적으로 깎아 내릴 개연성이 농후하다. 그 대표적 실례가 주님을 향해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하던 군중들이다. 그 군중들이 며칠 후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로 돌변한 것이다. 민심은 조석변개다.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의지했다가는 백발백중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바람직한 삶의 요체는 무엇인가? 방배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 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로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천장부지로 올라 가더라도 하나님도 사람도 아랑곳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추락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비애는 올라 갈 때의 기쁨과 정비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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