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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가신 길을 묵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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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09-09-08 14:31 조회8,8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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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가신 길을 묵상해 보자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이 어느 날 런던에 있는 휘슬러(미국의 화가 1834-1903) 슈트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휘슬러의 최근 작품들에 대하여 감탄을 금치 못하여 기어이 캔버스에 손을 대고 말았다. 아! 이봐 거기에 손을 대면 안 돼, 아직 마르지 않았단 말이야! 괜찮아 이 친구야! 보다시피 난 장갑을 끼고 있잖나?(보성출판사 1987. 유모어 화술 에서) 물론 친구의 작품에 대한 경탄의 마음이 담겨 있는 마음의 표현에서 웃음을 감출 수 없는 정경이 연상된다. 그러나 작금에 설교 등에서 인용되는 유머들을 접하면서, 의식적으로 유머에 몰입하고자 하는 모습들이 엿보인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친근감을 갖게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리라. 그러나 관과 해서는 아니 될 일이 있다. 그것은 상대방의 감정이나 이웃들의 아픔은 지나쳐도 된다는 의식이 자리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혹이라도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단 한사람의 청중(회중)에게라도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고 웃음의 언어도 구사 하자는 것이다. 웃음이 생활에 활력을 주거나 어떠한 분위기를 전환 하는 등에 유익하다는 점은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러나 어떠한 상황이나, 어느 누구에게라도 웃음만이 유익을 갖게 한다.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때론 슬픔이 더한 유익을 갖게 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전도서 7장3-4절에는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어도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宴樂)하는 집에 있느니라라고 하면서 도리어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솔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전7:6)라고 증거 한다. 우리는 라틴어인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슬픔의 길] 또는 [고난의 길]라는 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웃음 속에 묻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까지 걸어가신 길에 대하여는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새삼 묵상해 보게 된다. (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9)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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