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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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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13-05-01 17:12 조회8,0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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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위리엄 틴테일’은 1490년대에 웨일스의 국경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모들린(Magdalen) 칼리지”와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기도 한 그는 성경을 번역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위협이 많은 곳이었기에 1524년 독일로 건너간 후 영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1525년 초에 신약성경 번역을 완료했으며, “퀼른(Cologne)”에서 성경을 인쇄하고 있었으나, 제보를 받은 교회 당국이 인쇄소를 급습을 당하기도 하였다. ‘틴테일’은 인쇄된 성경 몇 권만을 가지고 가까스로 그곳을 탈출하여, 보름스로 갔고, 1526년에 그곳에서 신약성경 영역 본을 출간할 수 있었다. 그 후 수많은 개정판이 나오게 되었으며, 1530년에는 당시 ‘틴테일’이 정착해 있던 “앤트워프(Antwep)”에서 모세오경(창세기에서 신명기 까지)을 출간되었으며, 이 후 ‘틴테일’의 성경은 영국으로 밀반입되기에 이른다. 1526년 말 ‘툰스톨’은 ‘틴테일’의 성경 번역 작업을 비판하는 설교를 했고, 성 바오로 성당에서 영어 성경을 불태우는 의식을 거행했다. 다음 해 캔터베리의 대주교인 ‘바르햄’역시 성경을 불태우기 위해 상당히 많은 성경을 구입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더 많은 인쇄를 하는 데 재정적 후원이 되었으며, ‘틴테일’의 번역은 곧바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그는 “영어 성경의 아버지”라는 정당한 칭호를 받게 되었다. 19세기까지 이루어진 모든 영역 신약성경은 ‘틴테일’ 성경의 개정판이라고 볼 수 있으며, 킹제임스역(King James Version, 흠정역)은 ‘틴테일’이 번역한 용어의 90퍼센트 가량을 그대로 사용 했고, 개정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 RSV)은 75퍼센트 가량을 수용했다. ‘틴테일’은 성경 번역 외에도 많은 작품들을 저술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사악한 맘몬의 비유(루터의 작품들 중 여러 군데를 번역, 인용하며 이신칭의에 관해 서술한 논문)”와 “그리스도의 순종(하나님께 충성해야 하는 일들은 제외한 상태에서 우리가 복종해야 할 세속 권력에 대한 의무를 쓴 책)”이다. ‘틴테일’은 구약성경 전체를 영어로 번역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535년에 가깝게 지내던 영국 친구의 배신으로 앤트위프에서 체포되었고, 1536년에 브뤼셀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주님,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 그의 기도가 응답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크랜머’의 설득으로 헨리 8세는 1535년부터 ‘틴테일’의 번역이 대부분 그대로 사용된 영역 성경의 출판을 허용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일들은 에드워드 6세의 통치기에 프로테스탄트 사상이 널리 전파되는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출처 기독교인물 사상사) 현대에는 그 누구든, 원하는 자는 성경을 대할 수 있으나, 성경이 우리의 손에 들려지고 읽혀지기까지에는, 수많은 고통은 물론 죽음(순교)을 당하면서도 굽히지 않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음에도, 오늘날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도 가벼이 여기는 풍조에 솟아오르는 분노와 함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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