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영혼과 양심을 존중하자(복음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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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08-01-19 09:41 조회9,409회 댓글0건본문
자신의 영혼과 양심을 존중하자 토마스 모어(Thomas More)를 두고 가히 목숨 바쳐 신앙양심을 실현한 명재상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신앙과 굳건히 지켰던 최후진술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하고 충직한 신하는 영혼과 양심을 존중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는 케더베리 대주교구의 성직자회의가 국왕의 인가 없이는 교회법규를 제정하거나 회의를 소집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성직자의 굴복(Submission of Clergy)문서를 수락한 날, 즉 헨리 8세를 영국교회의 영적지도자로 맞아들이게 된 날 1532년 5월 16일 국사의 짐을 덜게 해달라고[사직(辭職)] 헨리 8세에게 간청했다. 또한 이듬해 6월초에는 왕비인 “케서린”과 이혼을 반대하기에 “앤”을 왕비로 새우는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으므로 앤의 왕비 됨을 거부했으며, 1534년 의회에서 통과된 왕위계승 법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이모든 일들은 신앙의 양심을 버리고 세속의 불의와 부정직과 타협함으로 자신의 영달을 추구함을 거부하는 일련의 신앙의 표현이었다. 그 결과 1534년 5월 마침내 반역죄로 체포되어 런던탑에 감금되었다. 그는 15개월 동안이나 갇혀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자신을 꿋꿋하게 지키며 저술활동을 계속했으며, 1535년 7월 1일에 재판에 회부되었고, 그로부터 닷새 후 모어는 단두대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는 마지막까지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고, 눈물을 흘리는 친구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오 나도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소. 천국에서 다시 만나 유쾌하게 삽시다.”라고 위로했다. 또한 망설이는 사형집행인에게는 기운을 내게, 자네의 직책을 과감히 수행해야 하네, 내 목이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라고 태연히 농담을 건네며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지 400년이 지나서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굳건히 지킨 모어 진정성을 교회 앞에 공식으로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모어는 집안에 기도실을 두고 기도시간을 엄격히 지켰으며, 언제나 신앙 인의로서 자신을 고추 세우며 철저히 절제된 생활을 하였고, 세속적인 안락함에 빠질 것을 우려하여 항상 거친 모직 셔츠를 입고 다녔으며, 에라스무스에 따르면 모어는 식생활과 의생활에 있어 간소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고 전한다. “어거스틴”이나 “마틴 루터”는 물론 많은 종교개혁 자들은 물론 “에라스무스”나 “섹스피어”에게 까지도 그 영향을 미쳤던 “토마스 모어”의 삶은 이 시대 진정한 리더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성공하고자 하는 자, 온갖 거짓과 술수로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 또한 그러한 거짓들과 타협하며 융통성을 말하는 자, 신앙 양심은 묻어버리고 자신의 영욕을 채우기 위해 거짓을 참이라고 외치는 자, 나아가 그 거짓을 참이라고 옹호하며 무리지어 다니는 자들, 부정한 것을 잘한다고 박수치는 자들, 한 조각의 빵을 위해서는 신앙양심까지도 팔아도 괜찮다고 하는 자 등등은 물론 우리 모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빌2:5)”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이 시대의 충신과 간신, 지도자와 사술자 등 과연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을 향해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깊이 고뇌하면서 “자신의 영혼과 양심을 존중하는 자”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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