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 개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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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13-11-01 18:43 조회10,213회 댓글0건본문
해방신학? 개혁주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는 1928년에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서 출생하였고 백인과 이디언의 피를 받은 메스티조의 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은 해방신학이 1958년의 “메덜린회의”에서 출발하였다고 믿는 듯하며 언론들도 그렇게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나 보도는 정확한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해방신학의 태동은 그 회의보다는 4년이나 먼저 시작되었고, 그 태동기에 ‘구티레즈’의 역할이 중추적이었다고 말해야 한다. 해방신학에서 들여온 중요한 신학개념은 해방자 하나님과 해방자 예수님, 해방을 포함하는 구원관, 정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사랑의 개념, 정의 활동을 본질적 구성요소로 가지는 복음화의 개념, 가난한 이를 위한 선호적 선택과 가난의 개념 등이다. 이러한 신학적 개념과 사상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가톨릭 신자들이 진정한 신자이기 위해서는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인 내세적 구원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물질적, 정치적, 문화적 가난과 억압의 해방이 현실화되고 정의가 실현되도록 현세의 일상생활에서도 노력해야 한다는 신앙의 의무를 강조하며 행동을 촉구하는 개념들이다.(출처 : 신동1987년 1월호 별책부록) 작금에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는 개혁주의가 다중을 이룬다고 할 수 있으나 실상은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 점령당한 감을 지울 수 없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이야 말로 ‘구스타보 구티에레즈’가 주창한 해방신학의 개념을 약간 차용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갖는다. 따라서 일부 목회자들이 독설과 저주로 “해방신학”운운하는 것을 볼 때에는 필자 역시 비난에 맹목적으로 가세하였던 나날을 돌이켜 보며 서글픈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개혁주의를 표방 한다며 힘과 권력 등에는 “정교분리” 뒤에 숨어버리거나, 해방신학 등은 용공신학이라 하여 그들을 척결해야한다며 학살을 조장하는 일에 앞장서는 등, “과연 그 정체성은 무엇이란 말인가?”하는 의문 속에 “개혁주의? 노예주의?”하는 질문을 던져 보기도 했다. 따라서 ’구티에레즈‘가 폭력을 지지하거나 공산주의 이론을 뿌리로 삼았는지를 찾아보기도 하였지만 그에게서는 아직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보수주의를 지향한다는 이들에게서는 해방신학은 공산당과의 공동전선을 통해 불법 폭력으로 합법적 정부를 전복한다는 비난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과거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혁명정부는 선거패배 이후 정권을 보수 세력에게 평화적으로 이양하였었다. 그러나 칠레의 보수 세력들은 선거에 패배하자 군부를 사주하여 불법 쿠데타를 일으켜 합법적 정부를 전복시켜 정권을 찬탈한 일도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보수정권에서 진보정권으로, 진보정권에서 보수정권으로 평화적 정권이양이 되어 왔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써 보수, 진보가 엄연히 존재한다. 함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기독교계는 논리만 화려할 뿐 개혁주의의 정체성을 상실해 버린 감을 지울 수가 없다. 과연 독일의 ‘본 훼퍼’는 개혁주의자 일까? 보수주의자 일까? 신정통주의자 일까? 해방신학자 일까? 공산주의자 일까? 사신신학자 일까? 평화주의자 일까?, 따라서 대한민국의 ‘개혁주의를 주창하는 우리는 ‘본 훼퍼’보다 낳은 점이 무엇이 있을까...? 신학의 논리성...? 그렇다면 독일교회가 그리스도와 같이 여겼던 ‘히틀러“는...? 따라서 우리 한국교회가 제 아무리 옳은 개혁주의를, 아무리 바른 신학을 외친다 해도, 진실과 정의 앞에 눈을 감아버린 다면, 그 것은 가톨릭 신부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에도 못 미치는 위선에 불과 하다는 도전에 무너져 가지 않을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렘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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