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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껏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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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장로교신학 작성일11-08-03 17:35 조회10,2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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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껏 달려가자! 대학 동기 동창이 홀연히 떠나자, 장례식장에서 만난 한 친구들의 입에서는 “이제 우리도 나이가 먹어가는 구나!”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어제 스쳐 지나가는 듯이 접했던 “늙음에 대한 불안을 버려라, 초연한 마음으로 나이 들어감을 즐긴다.”는 글귀가 어렴풋이나마 떠올라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려 책을 집어 들었다.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 유쾌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을 향해 한 부인이 다가가 물었다. “우린 80대요, 왜요?” 순간 세 사람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한 노인이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부인의 순진한 질문이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기쁨을 산산조각 내고, 나이라는 현실을 머릿속에 강하게 일깨워 준 것이다. 그리고 즉시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다. 다른 것들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나고 이제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나이 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처럼 명랑하고 유쾌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갑자기 이처럼 심각하고 우울하고 자기연민에 찬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까? 나이 자체가 지닌 본성 때문일까? 만약 그렇다면 늙은 사람들은 항상 근심에 찬 표정만 짓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노인이라고 해서 우울한 삶을 살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이성적인 사람들은 자기 나이를 탓하지 않는다. 젊었을 때보다 나이 들어서 훨씬 더 행복하다고 주장할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나이라는 것이 우리를 평생 괴롭게 하는 과제일까? - 진짜문제는 나이에 대한 생각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면 그 다음에는 나이와 신체에 대해 초연해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출처 = 행복에 목숨 걸지 마라. 한국경제 2011. 3) 그렇다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 여호야다가 나이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일백 삼십 세라 무리가 다윗성 열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저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 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대하 24:15,16),”고 외치며 또한 사도 바울도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되었다(몬9)”고, 노년에도 하나님의 일에 관한한 멈추지 않았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에 대하여 과연 초연한가? 물론 의심도 가리라. 이는 각자의 현실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당신의 지금에 하나님의 뜻이 개입되어 졌다면 그 순간이 바로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며, 젊음의 힘 못지않게 값있고 아름다운 생이 아닌가? 우리는 황혼의 노을을 바라보며 때론 탄성을 지른다. 그리스도인의 인생도 그와 같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 나이를 탄식하지 말고, 열정을 품고 산으로, 해변 등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향해 힘껏 달려가자! (12)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13)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14)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15)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시9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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