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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더불어 향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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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장로교신학 작성일10-08-01 14:54 조회8,1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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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불어 향유 하자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던 훈련병 '갑돌이'가 어느 날 밤, 어둠 속을 뚫고 PX를 향하여 뛰어가다가 다른 사람과 맞부딪쳐 그 사람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쓰러진 사나이가 일어나 바지를 털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 사나이는 군복 칼라에 별을 두 개나 달고 있는 장군이었다. '갑돌이'는 새파랗게 질려 부동자세를 취하였다. 너, 내가 누군지 아나? 장군은 얼굴을 붉히고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넷, 훈련 소장님이십니다. 너는 군법회의 감이야! '갑돌이'는 당황했다. 제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훈련소장은 더욱 화가 나서 말했다. 너 같은 놈이 누군지 내가 알 리가 있는가?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돌이'는 죽어라하고 어둠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유모어화술'에서) 과연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떨까? 자신은 하나님을 안다 하고,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신 분이라고 하면서, 혹이라도 하나님은 나의 이 순간을 어찌 아시겠는가? 하는 거짓과 위선 속에 살아가지는 않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 여러 가지 계획에 의하여 바쁜 일정을 보내는가하면, 잠시의 휴식 등을 통하여 재충전하기 위하여, 성도들과 함께 기도원으로, 산으로, 바다로, 또는 해외로 향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을 하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항상 자기 자신을 살피며 주위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없도록 세심한 주의가 요청 된다. 언제나 그러하듯 자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이해 할 수 없는 행동들은 삼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니 아무렇게 행동해도 이해하여 주시리라 생각해서일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나 정도야 알아보시겠는가? 하는 마음에서 일까? 간혹 이해할 수 없는 소식들을 접했던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양이 작열하는 노출의 계절, 우리가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서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도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인바, 자못 인간의 본성이 노출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서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니 수백, 수천의 죄의 본성이 드러날 때도 있다. 그러나 대자연의 아름다움 까지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이웃과 더불어 향유(享有)하고자 할 때만이 감사가 넘치는 계절이 될 것이다. (1)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3)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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