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의 습관을 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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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08-10-01 14:56 조회8,860회 댓글1건본문
선(善)의 습관을 들여라 “대개 선에는 세 가지 구별이 있다. 모든 외적인 선과, 정신에 관한 선과, 육체에 관한 선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정신에 관한 선을 보고 그것이 가장 뛰어난 의미의 선이며 다른 모든 것에 미치는 선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신에 관한 선으로서 생각되는 것은 정신의 작용이라든가 활동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친한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행복한 때인가? 역경에 처했을 때인가? 친한 친구는 양쪽 어느 편에나 다 필요한 것이다. 역경에 처했을 때는 구조를 요하며 행복한 때에는 생활을 같이 할 상대라든가, 돌보아 줄 사람을 요하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 그러기에 ‘쉴러’ 같은 이는 ”악은 언제나 악을 낳는다. 이것이 바로 악의 저주이다“라고 했는가 보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삶을 어떤 생각에서 가꾸어 가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일을 접하게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언어(말)가 그러하듯이 한번 취한 행동이나, 한번 일어난 일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들은 인간생활의 비극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행복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을 경험한 이는 그 고통의 아픔을 잊기가 쉽지 않음으로 평생을 좌우하기도 하나, 행복의 일은 그리 오래 기억되지 않는 다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따라서 행복을 누리는 것은 선한 행실을 반복하는 것이다. 선행에 반드시 뒤따르는 주된 대가는 언제나 선을 낳으며, 그래서 그 선행의 반복에서 만이 반복 된 만족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선한 습관과 악한 습관, 어느 것에 더 많은 비중이 있느냐에 따라 행복하다 또는 불행하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은 많고 적음이나, 넓고 좁음이나, 높고 낮음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감동에서 나오는 것임으로 신앙고백적인 생활로 습관의 바탕을 형성하게 하여 선의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눅 6: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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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두옥님의 댓글
안두옥 작성일서학장님의 놀라우신 글 실력(선한 마음)에 읽는 저는 항상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