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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은 자의 삶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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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09-02-21 16:10 조회7,9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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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은 자의 삶을 누리자 어느 신부님이 강론 속에 나는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 “ 그는 숟가락 몽둥이 하나밖에 없드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누어 주고 또 나우어 주어도 양복이고 무엇이고 늘어나니 고민입니다.” 라고 말하여 장내 웃을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러나 그 웃음은 모두가 흐뭇해하는 평안의 웃음이었으리라. 나 역시 그의 말에 많은 것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제(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生福終)했다 함으로써 그분에 대한 이야기들에 많은 관심을 갖게 한다. 87년 명동성당에서 경찰관들을 몸으로 막았다며 “나를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야 학생들을 검거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한국의 민주주의에 한 페이지를 기록하게 한 분, 어렵고 소외 된 자들의 편에 있던 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분의 정직과 청렴도, 그분의 나라사랑과 민족사랑, 나아가 북녘동포 사랑 등 그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신앙이라고들 칭송한다. 물론 개혁교회 측의 일각에서는 천주교를 총체적 이단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김 추기경의 삶속에서 사랑이 배어 나옴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개혁을 외치며 보수신앙을 파수해 나아간다면서도 독재정권에 기생하거나 아부하며 많은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당해도 오히려 박수하거나 침묵하는 그리스도인들보다 그가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강원용 목사님에 대한 글이 2009년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읽으며 큰 감동과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분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킨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김수환 추기경은 삶을 마감했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천주교로 전도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드니 우리를 돌이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몇 년전 맨발천사 최춘선 목사의 삶이 소개된 책과 CD를 접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은 것과 같이, 작금에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통해 개혁교회들 지도자들의 삶이 그들을 이단이라고 하기 전에 그들보다 더 많은 은혜를 누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라고 증거 하면서도, 권력싸움, 재산싸움, 교권싸움 등은 물론 갖은것 자랑이 복음으로 포장 되어 얼룩져있거나 또한 오직 자기를 위한 세상의 성공이 곧 복음전도로 생각하는 일부 개혁을 외치는 교회지도자들에게 “우리 다시 한 번 우리모습을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고 싶다. 너나 잘해라, 판단하지 말라 등등으로 모든 것을 희석시키지 말고 이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직을 기뻐하심을 되새기며 생동적 보수(生動的 保守), 화합적 일치(和合的 一致), 자애적 애린(自愛的 愛隣), 자주적 자립(自主的 自立), 순교적 봉사(殉敎的 奉仕)精神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의 삶을 누리도록 하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행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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