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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의 복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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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장로교신학 작성일11-08-03 17:36 조회6,9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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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의 복을 누리자! 22일 “노르웨이”에서 “브레이비크”라는 한 극우주의 자에 의하여 약76명이란 어린 생명들이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그런데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가 “극우민족주의자이며”, “보수적인 기독교인”이라 자처 했다는데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믿음 있는 한 사람은 이익에만 관심 있는 10만명의 힘과 맞먹는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는데,(출처 = 국민일보) 과연 “그들이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중세기 남부 프랑스, 북부 스페인, 북부 이탈리아에서 “알비파(Albigenses) 혹은 카타리파(Carthari)” 라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직자와 순례자의 부도덕, 성자와 형상의 경배를 폭로하고, 성직자와 그들의 주장을 완전히 거부하고, 교회의 상태를 비평하고, 로마 교회의 주장을 반대하고, 주로 성경에 의지하고, 사도시대의 단순한 교규를 지키기를 힘썼고, 자기 부정의 생활을 하며, 도덕의 순결성을 강조했으며, 이들은 실로 중세기에 있어서 엄격한 성경 중심파 였었다. 1167년에는 남부 프랑스의 대부분의 인구를 포섭하고, 1200년에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었다. 1208년에 ‘이노센트’ 3세가 박멸을 명령함에 따라 역사에서 보기 드문 피 흘리는 학살이 벌어졌다. 마을마다 군대가 들어와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주민들을 학살 하였으며, 1229년에 설립된 종교 재판에 의하여 100여년 만에 알비 파는 전멸되고 말았다. 또한 남부 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덴스파(Waldenses)가 있었는데, 이는 남부 프랑스에 있는 ‘리용’의 부자 상인이 “피터 발도는(Peter Waldo, 1176-1217)”에 의해 이끌어 졌다. 그들은 그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돌아다니며 전도했고, 성직자의 횡령과 낭비를 반대하고, 성직자만이 복음을 가르칠 수 있는 특권을 부인하고, 죽은 자가 연옥에 가도록 미사와 기도를 드리는 것을 반대하고, 성경을 신앙과 생명을 위한 유일한 법이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전파로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려는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교황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았음으로 1184년에 교황에게 파문을 당하였다. 발도는 점점 무자비한 종교 재판의 형벌을 받아 터린(Turin)의 서남쪽 알프스 계곡에만 남게 되었다. 이들의 박해를 받음이 지금의 이탈리아의 지도적 “프로테스탄트” 단체가 되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개혁주의”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자들이 있었으나 작금에는 그 외침들마저 진정성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아, 그 같은 개혁의 외침들이 “대한민국 기독교계에서 일어난다면 과연 어떠한 반응들이 보여 질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기우라고 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아픈 역사를 갖고 있으며,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범죄행위에 동조, 옹호 내지는 묵인으로 방조자의 자리 있었으면서도 세칭 “출세의 넓은 길”만을 달려 온 이들 중 믿음과 개혁주의 내지는 보수주의를 외치며, 또 다른 형태의 이익집단을 이루고 있는 이들이 엄존 한다는 생각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금의 “노르웨이”의 사건을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와는 별개의 사건이라 단정해 버리기보다는 얼마든지 우리에게도 발생될 개연성이 있음을 주지함으로, 차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성취의 복을 누림으로, 혼돈 속으로 몰아가는 어리섞음을 떨쳐 버리고, 유 무형의 그 어떠한 형태의 테러도 발생되지 않도록 진정성 있는 “보수”이든 “개혁주의”이든 그 정체성을 회복하는 은혜를 누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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