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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燃燈)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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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12-05-04 19:16 조회5,9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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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燃燈)을 보라! 5월 28일, 석가탄신일은 아직 한 달여가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웃의 한 사찰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연등(燃燈)을 볼 수 있어, 길을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며 길거리에도 역시 연등이 수를 놓기 시작하였다. 그 등들에는 각자의 사연들과 간절한 바람들이 담겨져 있을 것다. 그러데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그 등에는 각각의 값이 매겨져 있다고도 한다. 사실일까.....? 그렇다면 그 연등 수로 보아 가히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 그러니 사월 초파일이 다가 오면서 연등의 수는 늘어 날 것이고, 길거리에도 더 없이 수 많은 연등을 보게 될 것이며, 또한 매년 그러하듯 온 길거리를 누비는 연등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기독교인들은 비난하지 않는다. 그런대 어찌하여 타 종교인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갖가지 구실을 들어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욕설들을 쏟아 붙는 것일까? 물론 교회를 비판하는 이들이 들고 나오는 이야기의 1순위는 당연 헌금 이야기이다. 세인들이 왜 그리도 교회의 헌금의 용처에 대하여 민감한 것일까? 통계상으로 보면 사회봉사 기관과 봉사 금액이나 기여도에 있어서도 모든 종교기관을 통합해도 개신교가 압도적으로 기여해 왔고, 기여하고 있음을 통계청에서도 이를 입증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유독 교회의 헌금의 문제에 그리도 민감하며, 독설을 품어 대는 것일까? 교회의 행정은 모든 신자들에게 개방되어 있고 타 종교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해서 일까? 또한 모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독교를 가장한 세칭 이단이라 불리는 자들이 안티들로 가장하여 비난을 더욱이 조장하기 때문일까? 물론 우리들의 허점도 많다. 따라서 더욱 잘 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고 개신교가 대한민국에 기여한 순기능적 역할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관심을 기울여 볼 수는 없을까? 함께 살아가야 하며, 서로가 사랑해야할 “대한민국”의 한 동포요 국민이며, 연등도 그러한 뜻을 함께 하지는 않을까? 그저 개인적 욕구만을 담은 것은 아니리라 보기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의 향상교회(담임 정주채 목사)는 공동의회에서 교회당 이전 때 발생한 40억 원의 상당의 지가상승분을 사회로 환원하기로 결정했단다. 그 뿐인가! 이미 천국에 계신 ”최춘선“ 목사는 엄청난 부동산을 무척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를 분배해주고 정작 자신은 한 겨울에도 맨발로 다니시며 복음을 전했다고 하며,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자를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는 등, 수많은 개신교의 성도들의 아름다운 삶을 볼 수 있지 않는가? 물론 극히 일부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을 저지르는 이들도 있음을 인정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아가 한 가지 더 말한다면 이웃의 사찰의 엄청난 부지의 재건축 현장에는 작은 현수막하나 걸려 있지 않다. 물론 개신교인들의 비난도 전혀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교회의 재건축 현장에는 온갖 비방이 난무해야 하는 것인가? 비단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해도 한번쯤은 서로의 모습을 돌아보면 어떨까요? 바른 채찍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맹목적이고 악의적인 비난은 서로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이들을 사랑 합니다. 타 종교 인들이라 해서 미운 마음이나 배타적인 마음을 전혀 갖지 않고 당연히 사랑해야 하기에 기도하며, 전도 또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결코 강제 하지 않는다. 그리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또한 개신교인들이여 “사찰의 연등을 보십시오!”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지? 이러한 때에 우리도 스스로를 성찰해 보도록 하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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