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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공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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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14-03-07 17:13 조회6,6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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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공범자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란 말은 하늘이 친 그물은 하도 커서 얼른 보기에는 엉성해 보이지만 이 그물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악한 사람이 악한 일을 해도 금방 벌을 받고 화를 입는 일은 없는 것 같지만 결국 언젠가는 자기가 저지른 죄의 값을 치르게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노자’ 73장에 나오는 말인데 원문에는 “소이불루(疏而不漏)”가 아닌 “소이불실(疏而不失)”로 되어 있다. 하늘이 미워하는 바를 누가 그 까닭을 알리요, 이러므로 성인도 오히려 어려워한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고도 잘 이기며, 말하지 않고도 스스로 오게 하며, 느직하면서도 잘 꾀한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커서 성긴 듯하지만 빠뜨리지 않는다. 라고 되어 있다. 이 “소이불실(疏而不失)”이란 말이 “소이불루(疏而不漏)”로 된 것은 위서 임성왕전에서 볼 수 있다. 노담이 말하기를 “그 정치가 찰찰(察察)하면 그 백성이 결결(鈌鈌)하고, 또 말하기를 하늘 그물이 크고 커서 성기어도 새지 않는다.”고 했다. 찰찰은 너무 세밀하게 살피는 것을 말하고 결결은 다칠까봐 조마조마 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악한 사람들이 악한 일로 한때 세도를 부리고 영화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언젠가 하늘이 그물을 끌어 올리는 날은 도망치지 못하고 잡히게 된다.”는 뜻이다.(출처 : 고사명언 명구 사전) 작금에 우리는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진실인지 그 분별이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인식한다. 상식선에서 생각을 해도 저 사람의 말이나 행동은 분명 거짓으로 인식되는데도 때론 그 것이 진실이란다. 또한 분명히 저 사람의 말이나 행동은 진실로 보이는데도 그 것이 거짓이란다. 그럼으로 진실과 거짓을 분간 하는데 여지없이 구멍이 나는 것이다. 물론 바라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현대의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신앙 양심의 눈에 색안경을 걸치고 있는 감을 지울 수 가없다. 따라서 그 안경의 색상을 통하여 투영되는 것으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니 어찌 참다운 분별을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바라본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에 합하면 진실이고, 반하면 거짓이 된다. 이 때 우리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이 아닌 바라바를 원하니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외치던 사람들의 군상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가 없다. 그들은 과연 유대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이었을까? 그들은 예수님보다도 바라바가 정직한 자라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세속적 유익만을 추구하기 위하여서 하나님께 대적하면서까지 화인 맞은 양심을 진실이라고 외친 것일까? 그 다중의 외침이 진실이란 말인가? 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우리가 바라바를 원한다는 식의 외침을 해도 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분명 정직과 진실을 명하시는데도 그리스도인을 자처 하면서 진실을 거짓이라 하며, 거짓을 진실이라 하는 가치 기준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없고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 또한 눈을 감은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힘 있는 자들의 선동에 휩쓸려가고 있는 초라함은 없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예수님께서 곧 오시리라며 그분의 재림을 대망한다면서도, 실생활에서는 어김없이 자신의 탐심을 위하여 거짓을 진실이라 하고, 진실을 거짓이라 하며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각종 불의에 동조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안기는 악의 공범자로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린 아픔 보다는, 가톨릭 앞에 당당히 맞서 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선배들의 신앙정신이 강수같이 흐르는 한국교회를 갈망 한다. (6)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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