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여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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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14-04-08 09:13 조회10,319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께 여쭙자! 두로(Tyre)와 포에니키아(라: Phoenicia ; 영 ; 피니시어 Phoenicia)에서도 많은 순교자들이 속출했다. 그들은 채찍으로 맞고, 단 무쇠로 낙인(烙印) 찍힌 성난 표범, 멧돼지, 곰, 황소 등의 밥으로서 던져졌다. 그런데 오랫동안 굶주리게 한 야수들은, 이들 경건한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지도 않았으려니와 가까이도 하지 않고, 오히려 아우성을 치는 군중들을 향해 으르렁댔다. 그러나 경건한 성도들은 도리어 야수들의 성을 돋구기 위하여 박해자들이 명하는 대로 벗은 몸인데도 불구하고 손으로 야수들을 때렸다. 그러나 야수들을 성도들의 몸에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으며, 때로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듯하다가, 어떤 신성한 힘에 격퇴되는 듯 물러섰다. 이것이 반복되며 너무 긴 시간이 계속 됨에 따라 관중의 마음을 불안케도 했다. 그러나 결코 야수의 밥이 되게 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가진 박해자들은 어떻게 하여서라도 맹수들을 성나게 하려 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30세가 될까 말까한 청년에게 달려들게 했다. 이 때 청년은 십자가 모양으로 팔을 편 후, 대담하게 전심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이때에도 표범, 곰, 등은 이상 하리 만치 어떤 힘에 격퇴되는 듯하고, 물러나고 마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다른 5명의 신자가 들소에게 던져졌다. 들소는 보통 죄인들에 대하여 언제나 뿔로 받아 공중에 떳다 내려뜨린 후 반 죽음이 된 것을 다시 그렇게 하곤 했다. 그러나 성도들에 대하여는 다만 성난 모양으로 돌진 하다가도 굳건히 대하는 그들 앞에서 발로 땅을 세차게 치며, 뿔로 여기저기를 받을 뿐, 그들에게 접근치도 못하고 물러서곤 하였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집행관들에게 단 무쇠로 낙인을 찍히면서도 웬일인지 뒤로 물러서기만 했다. 들소 이외의 많은 야수들도 역시 그랬다. 그럼으로 성난 박해자들은 드디어 칼로 그들을 베고, 무덤이 아닌 바닷물에 던져 버렸다. (출처:폭스의 순교사) 하나님께서는 왜? 꼭 순교하게 해야만 하셨을까? “어떤 뜻에서 야수들로 하여금 성도들을 범접하지 못하게 하였을까?” 그러면서도 결국 그들을 순교하게 하신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군중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단순히 두려워하는 마음만 가지게 되었단 말인가? 군중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들에게서 아무런 감화도 받지 않았단 말인가? 군중 속에 반드시 예수님을 영접 하고 구원받게 해야 할 자들이 있어서 일까? 아니면 야수들과의 쟁투는 성도들로 하여금 괴로움만 더하게 한 것일까?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떠한 질문보다도 우리 스스로에게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나는 야수들 앞에 서 있는가? 아니면 관중석에 앉아 목청껏 외치고 있는가? 그도 아니면 검을 들고 집행관의 자리에 서있는가? 순교성도들과 함께 서있는가? 하는 등의 질문 말이다. 언변, 이론, 학문, 자기만의 주장, 거짓 등으로 얼마든지 자신을 포장 할 수는 있다. 그리고 포장된 것으로 가슴 아픈 일들을 자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아픔에 대한 상처는 누가 싸매어 줄 것인가? 따라서 사순절의 끝자락, 고난주간이 지나면 부활절을 맞이하게 되는데, 과연 선택 받은 자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느 위치에 있기를 원하실까? 반드시 여쭈어 보아야 할 것이다. “아파서 흑흑하는 이들이 없도록~!”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4)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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