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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받을 수 없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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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14-04-08 09:15 조회4,8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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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받을 수 없는 자들! 1945년에 독일이 멸망한 뒤 몇 달이 지나자, 사람들은 대충 정신을 수습한 연후에 나치 정권이 남기고간 폐해를 복구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거할 곳과 양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부족했던 것은 바로 사랑과 희망이었다. 당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네덜란드의 시계 제조자 ‘코리 텐 붐’은 독일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 주려고 노력했다. 그녀 자신도 유대인들을 숨겨 준 죄로 자매였던 ‘베스티’와 함께 “라벤스부르크” 집단수용소에 수감된 바 있었다. 그녀는 <은신처 THE HIDING PLACE>에서 “나는 하나님의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패전국 독일에 왔다”고 말했다. 어느 날 코리는 뮌헨에서 가두연설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연설을 듣고 있는 청중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절망의 빛이 감돌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연설이 끝나자 조용히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그녀는 흩어지는 군중을 뒤로한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그녀는 얼른 머릿속으로 그가 입고 있던 오버코트와 같은 갈색 모자를 지우고 그 위에 청색 군복과 해골과 십자가가 그려진 모자를 쓴 것을 보았다. 그러자 집단수용소에서 자신의 언니와 함께 그가 보는 앞에서 벌거벗고 지나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의 언니 ‘베스티’는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가장 잔인했던 간수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훌륭한 메시지였습니다. 아가씨, 아가씨의 말대로 우리의 죄가 바다 속에 깊이 가라앉았다는 말은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라벤스부르크” 수용소 이후에 계속 살아남아 기독교인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수용소에서 저질렀던 그의 죄를 용서하셨다. 그는 “하지만 이제 그 말을 아가씨를 통해 직접 듣고 싶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 순간, 모든 시간이 정지한 듯했다. ‘코리 텐 붐’은 그를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를 베푸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물론 그녀는 용서를 강조했다. 하지만 ‘베스타가 그곳에서 죽었어. 그가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과연 그녀의 끔찍한 죽음이 쉽게 잊혀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마음은 더 없이 냉랭해졌지만 그녀는 용서가 감정이 아닌 의지의 행위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한 뒤에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강렬한 전류가 나의 어깨에서부터 팔을 지나 서로 맞잡은 손에 전달되었다. 그와 동시에 상처를 치유하는 따스함이 온몸에 물밀 듯이 밀려들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그녀는 “온 마음으로 형제를 용서합니다.”라고 부르짖었다.(출처 오스기니스, 고통 앞에서다) 1919년 3·1절(三一節) 이후 95년이 지났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라벤스부르크” 수용소에서 가장 잔인했던 간수 중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나 고통 받은 당사자에게 “용서 한다”는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는 자에게서, 작금의 일본의 수상 등 극우파들의 국제적 행패에 서글픈 마음뿐인데, 그들을 용서 할 수 있을까?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 자신들의 죄악을 미화 시키며 그 정당성만을 주장하고 온갖 국제적 거짓 술수를 통해 또다시 침략의 근거를 마련하는 저들인데, 우리는 용서할 수 있을까? 한국동란 시에 “이제 일본은 살았다!”하며 한국동란은 자신들에게 축복이라고 노래를 불렀던 당시 수상이나 현재의 수상 등, 그들에겐 조금의 뉘우침이 없는 화인 맞은 양심뿐인데, 그들이 용서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장에 춤을 추는 우리의 일부 인사들을 바라보며 그저 아픈 마을을 쓸어내릴 뿐이란 말인가?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 (마18: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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