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 05. 15. |
대한예수교장로회 공의회가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의 설립을 결의하고 평양 대동문 옆 마포삼열 선교사 자택에서 본교의 전신인 대한예수교장로회신학교가 개교되다. |
1907. 06. 20. |
대한장로회공의회에서 학교명을 『대한장로회신학교』로 확정하고, 소안륜(蘇安倫) 목사를 교장으로, 교사는 마삼열(麻三悅 = 마포삼열), 배위량(裵緯良), 한위렴(韓?廉), 방위량(方緯良), 편하배(片夏?), 전위렴(全衛廉), 이눌서(李訥瑞), 구예선(具禮善), 왕길지(王吉志) 였으며, 제 1회 졸업생으로는 서경조(徐景昨), 한석진(韓錫普), 양전백(梁甸伯), 길선주(吉善宙), 이기풍(李基豊), 송린서(宋麟瑞), 방기창(邦基昌) 이상 7명을 첫 졸업생으로 배출하였다. |
1908. 05. 12. |
미국인 메코믹(Nettie F. McComick)여사의 제 1차 헌금으로 평양시 하수구리 100번지에 교사를 건축하여 이전하다. |
1919. 03. 01. |
3.1 독립만세 운동에 전교생이 가담, 투옥되어 1학기는 자동 휴교되다. |
1922. 09. 27. |
미국인 메코믹(Nettie F. McComick)여사의 제 2차 헌금으로 학교 준공 헌당 예배를 드리다. |
1925. 10. 20. |
제 3대 교장으로 라부열(R.I. Roberts)박사가 취임하다. |
1938. 09. 20. |
일제의 강압으로 인하여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되다. |
1940. 04. 11. |
『대한장로회신학교』의 폐교 이후 채필근 목사가 제 4대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평양장로회신학교』라 칭하다. |
1945. 08. |
북에 진주한 소련군 주둔 사령부에 의해 학교건물이 강제 점거되어 신학교가 서문박교회 교육관으로 이전하여 신학교육을 계속하다. |
1945. 09 .01. |
민족운동의 선구자인 김인준 목사가 제 5대 교장으로 취임하였으나 북한공산정권 당국이 용공교육 회유책으로 신학대학 인가를 내어 주겠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가를 받고 있으니 세상 나라에서 대학인가가 필요치 않다"고 하며, 완강히 거부하다 반동이라는 죄목으로 순교하다. |
1947. 07. 10. |
반공통일 운동의 주역이신 김화식 목사가 제 6대 교장으로 내정되어 집무하시다 반동분자 죄목으로 체포되어 순교하다. |
1947. 09. 01. |
제 7대 교장에 이성휘 목사가 취임하였으나 공산당이 세운 기독교연맹신학교에 강제 통합하게 함으로 부득이 폐교하고 6.25직전 이성휘 목사는 순교하다.- |
1975. 08. 15. |
1.4 후퇴 시 월남한 평양장로회신학 출신 선배들과 결속하여 평양신학교로 서울에서 재건하고 김성흡 목사를 이사장으로 추대하다. |
1975. 10. 03. |
제 8대 교장으로 김성흡 목사가 취임 |
1977. 03. 05. |
제 9대 교장으로 평양장로회신학교 제 36회 졸업생인 김오성 목사가 취임 |
1982. 02. 09. |
제 10대 교장으로 평양장로회신학교 제 34회 졸업생인 박병훈 목사가 취임 |
1984. 09 .01. |
제 11대 교장으로 김성흡 목사가 취임하고, 김오성목사가 신학연구원 원장으로 위촉됨. |
1988. 03. 01. |
김오성 목사가 은퇴하시고 제 5대 연구원장에 김안일 목사가 취임 |
2001. 09. 20. |
제12대 학장으로 서헌철 목사가 취임 |
2002. 10. 11. |
“대한민국”의 장로교신학교로써는 최초 평양에 세워졌던 “대한장로회신학교”의 설립정신과 전통적 신앙인, 하나님중심 신앙, 성경중심 신앙,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앙, 보수주의 신앙을 지켜 “대한민국” 장로교의 영광된 역사를 창조해낸 선교사님들과 길선주, 이기풍, 주기철, 손양원, 남궁혁 목사님 등의 숭고한 순교, 희생, 봉사 신앙의 정통성을 유지 계승시켜 나아감은 물론 “대한민국” 장로교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오직 주안(主內), 오직 영광(榮光), 오직 믿음(信仰), 오직 성경(聖經), 오직 은혜(恩惠), 오직 성령(聖靈), 오직 감사(感謝)”의 교훈(校訓)과 “생동적 보수(生動的 保守) 화합적 일치(和合的 一致), 자애적 애린(自愛的 愛隣), 자주적 자립(自主的 自立), 순교적 봉사(殉敎的 奉仕)”의 5大 精神에 입각, 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학교명을 “한국장로교신학교”로 정하고 현재에 이르다. |